[구약성서배경사] 다윗 왕조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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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본 문서는 2023년에 직접 작성했으며, ai는 일정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또한 자세한 자료 이미지는 참고문헌의 논문에서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들어가며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시대는 왕조의 등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때 사울과 다윗이라는 전설적인 두 왕은 이스라엘의 느슨한 지파동맹체계를 하나의 행정체계 아래에 규합하려는 시대의 과도기적인 인물로 성경에 등장한다. 이 이스라엘 군장국가의 왕 사울 그리고 이후 유다지파의 왕조를 열게될 다윗의 연대기 설정 문제는 해당 인물들의 역사성과 관련하여 주요한 주제가 된다. 먼저 필자는 다윗의 시대를 고연대와 저연대의 사이의 어느 시점으로 설정하여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통일 왕국의 자취를 추적해보려 한다.


데버의 연구를 통해 보는 기원전 10세기의 도시들
  데버(William G. Dever)의 연구[1]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에 요새화된 도시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때 하솔과 므깃도 그리고 게셀은 열왕기상 9장 15절에 나오는 솔로몬이 역군을 일으켜 건축한 도시에 해당한다.

"솔로몬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여호와의 전과 자기 궁과 밀로와 예루살렘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그 밖에도 통일 왕조와 남유다의 수도로 사용되었다고 일컬어지는 예루살렘 역시 해당 시대에 이미 요새화과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새화는 행정력이 기반되어야한다. 곧 국가의 제도가 제 힘을 발휘해야 하며 중앙집권적 권력을 통해서 의도를 가지고 도시가 지어진 것으로 봐야한다.
  기원전 8세기에 발견된 상기된 도시들의 방어시설은 해당 시설들이 기원전 9~10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물을 개보수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고고학적 연구 사료가 있다.[2] 므깃도의 지층 5A/4B층의 성문들은 기원전 10세기 후반부터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데버는 자신의 저서해서 해당 방어시설의 논리적 근거로 ‘신아시리아’를 말하는데 아시리아의 위협이 시작된 것이 기원전 9세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3]다시 말해 해당 시기에는 이미 사회계층의 분화, 경제적 다양화, 행정 체계, 인구과 대외 무역 등 도시가 갖춰야할 요소들이 구비가 되어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예시

  이스라엘은 대륙의 패자로 군림할 수 없는 지정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나일강에 터를 잡은 이집트 문명과 북쪽으로는 유프라테스와 메소포타미아에 자리를 잡은 고대 근동의 패자들이 군림하고 있었다. 또한 구약에서 ‘블레셋인’이라고 부르는 철기를 가진 민족은 유대산지에 자리를 잡은 약소민족과는 차별되는 물질문화를 구가했다. 사무엘상에 따르면 초기 이스라엘은 사울이라는 왕을 추대한다. 그러나 사울의 나라는 엄밀히 따지자면 왕국이라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감이 있다.
  일례로 사울을 피해 도망간 다윗을 왕이 직접 잡으러 다녀야 했던 것과 사울은 직접 군사를 징발하여 이스라엘을 지켜야했기 때문이다. 그의 군대는 모든 지파가 동의하지 않았다. 사울은 전형적으로 체급이 큰 고대 전투의 선봉장으로 그려진다. 왕이 앞장서서 싸움터에 나가야하는 것은 중앙에 행정력을 집중시킨 체계에서는 사실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 봐야한다.

길보아 산

  길보아산에서 사울이 패배하고 그의 장자 요나단과 함께 전사한다. 길보아에서 발견된 해안지역의 토질로 만들어진 블레셋 양식의 토기는 당시에는 이미 내륙지방까지 블레셋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4] 따라서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은 매우 불리한 정세에 처해있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이후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다윗이라는 강한 카리스마의 왕을 중심으로 규합하여 하나의 통일 왕조를 추대하니 이것이 만세에 유효하다는 언약을 받은 유다지파 왕조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다음 논의점은 ‘군장국가였던 사울왕국이 한세대도 채 지나지 않아 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이다. 사무엘하 5장 25절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그의 왕궁으로 삼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또한 요단 동편과 다메섹에 이르는 정복활동을 벌였으며, 솔로몬은 그 뒤를 이어 하맛소바를 점령하고 다드몰을 건축한다. 솔로몬의 위상은 그의 아내들로 들어온 이방 왕비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사무엘-열왕기 역사와 역대기 역사가 말하는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의 실존과 과연 묘사대로의 규모였는지는 그들의 역사성을 논하는데에 주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19세기말 부터 발굴된 다윗성과 그 이후로 점차 확대된 다윗성은 Eliat Mazar의 자료를 참고하여 재구성해볼 수 있다.[5] 혹은 Joe Uziel and Itzhaq Shai의 철기시대 예루살렘과 Amibai Mazar의 주장대로 남부 레반트에서도 큰 규모의 건축물이었던 다윗의 성은 저연대기 학자의 주장[6]과는 달리 후기 철기시대에도 예루살렘은 수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다. [7]
 


 
강후구 박사의 연구를 참고
  강후구 박사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지역의 물질문화가 가나안 문화에서 점차 변화를 겪었으며, 민족이 변화한 특정 시점을 지목할수는 없지만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문화를 흡수하며 정착하고 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G지역의 계단식 구조 건축물과 오펠지역의 비문들은 은 기원전 10세기의 예루살렘이 행정적인 중심지로 작용할 수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8]
  결정적으로 텔단석비의 내용에 나오는 Melekh Yisra’el(이스라엘의 왕), Beyt David(다윗의 집)라는 단어를 통해 다윗의 왕조가 이미 있었음은 고고학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어졌다.[9] 즉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해 역사성의 논쟁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텔단 석비

  산지에 속하는 예루살렘에서 큰 규모의 석조 구조물을 건축할 수 있으려면, 강한 왕권과 중앙집권화된 행정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10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계단식 돌계단과 느헤미야 시대의 타워 옆에 있는 기원전 12-11세기의 W27의 테라스는 이 시대에 이미 정착자들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에 더해서 상기한 W27에서 발굴된 여부스의 토기는 성경의 증언과 같이 다윗 이전에 예루살렘에 살았던 여부족의 존재를 증명한다.[10] 상기한 예루살렘의 물질문화의 점진적 변화와 함께 이스라엘과 다윗왕조의 존재를 증명하는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저연대자들의 주장에서 다윗의 역사성에 대한 부분은 설득력을 크게 상실했다.


통일왕조 지층 - 예루살렘의 국제적 입지

  다음은 통일왕조 시대의 지층에서 발굴된 예루살렘의 물질문화를 통해 해당 도시의 국제적 입지를 살펴볼 것이다. 중앙산지의 예루살렘은 지정학적으로 개방된 위치라 할 수 있다. 이때 가나안 시대의 지중해 토기들과 아카드어 문서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국제적 국가 관계에 소속되어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각지에서 발견된 아스돗 토기는 블레셋의 문화를 흡수한 예루살렘의 문화를 보여준다.[11] 또한 R. Reich and E. Shoukron의 논문에서 말하는 기원전 8-9세기의 나일강 생선뼈는 이스라엘의 어류소비에 국제무역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이집트, 페키니아 등과 무역을 하는 도시로서 예루살렘의 위상은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한 후기 철기시대의 변모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13]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의 성벽에 대한 것이다. 아마르나 문서서 말하는 예루살렘의 군장 Abdi-Heba는 방어기능도 갖춰지지 않은 곳을 군장직의 중심지로 삼았을까? 중기 청동기인 기원전 18-16세기의 성벽의 존재는 기원후 8세기의 히스기야 시대까지의 요새화와 확충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앞선 논의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이전 시대의 문화와 유산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흡수하면서 그들의 자체적인 물질문화를 구성해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문화의 ‘재활용’을 통해 추정해본다면 긴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의 특성에 따라 기원전 12-10세기에도 이전 시대의 유산들을 이어 사용하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6방구조로 이뤄진 성문은 기원전 10세기의 양식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요새화의 흔적은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요새화시킨 하솔과 므깃도, 게셀 등에서 발견되었다. 해당 지역이 한 시대의 양식을 가지고 방어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면, 이는 한 문화권의 왕국이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는 체계화된 행정력을 요구하며[14], 문서적인 작업을 통해 칙령이 내려야만 가능한 작업이다.[15]

아마르나 문서 - 대영박물관

[결론]

  앞선 논의를 정리해보자.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성경의 내용들은 고고학적인 증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윗의 성은 저연대기적 주장인 기원전 7세기의 투영으로 봐야하는 전설속의 성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한 왕조의 수도 예루살렘과 그 성의 왕인 다윗과 그의 왕가가 역사의 표면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 통일왕조에 대한 국가적 소망을 투사한 환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다윗과 그의 도시는 강한 행정력과 왕권을 행사했으며, 국제적인 교류 속에 있는 확고한 도시였다. 또한 이스라엘인들은 기원전 12세기에 이미 중앙산지를 점거한 가나안 민족들의 문화를 흡수하면서 점진적으로 해당 지역에 정착하였고, 시간이 지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그들의 통일왕국은 역사성을 뒷받침 해줄 성서 외의 고고학적 근거들이 있으며, 이들을 단순히 후대의 전설로만 치부하는 것은 비약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저연대기학자들의 연구는 분명히 성서고고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기념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대주의자와 회색지대의 어간에서 충분히 타협 혹은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해냈다. 재구성해본 역사를 통해 성서가 가진 역사서(전기예언서)의 역사적 서술은 고대 시대의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를 잘 계승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주장하고자 한다. 성경은 요청된 신학적 응답을 역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신학적 역사 혹은 신앙공동체의 해답과 증언이다.



[1] William G. Dever, Beyond the Texts; An Archaeological Portrait of Ancient Israel and Judah, Atlanta: SBL Press, 2017, 217-218p

[2] William G. Dever,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양지웅역, 삼인, 2022, 158p, “이러한 초기 도시 성벽과 성문은 상당한 자원, 토목송사 기술, 그리고 수작업의 헌신이 나타나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3] William G. Dever,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양지웅역, 삼인, 2022, 159p

[4] Mario A.S. Martin, “The Provenance of Philistine Pottery in Northern Canaan with a Focus on the Jezreel Valley,” TA 44, 2017, 193-231p

[5] Eilat Mazar, The City of David Excavations 2005 at the Visitors Center Area (Jerusalem: Shalem Press, 2007).

[6] Finkelstein, I./Silberman, Neil A., The Bible Unearthed (New York: Free Press, 2001

[7] Amihai Mazar, “From 1200 to 850 B.C.E.: Remarks on Some Selected Archaeological Issues”, L.L. Grabbe, (ed.) Israel in Transition: From Late Bronze II to Iron IIa (c. 1250-850 B.C.E.). Volume 1. The Archaeology (New York: t&t clark, 2008), 106p

[8] 강후구, 예루살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 구약시대를 중심으로, 한국구약학회, 2018, 203~219p

[9] Christopher Eames, The Three ‘David’ Inscriptions - Chances are you’ve heard of the famous one from Tel Dan—here are two more, 2021. 이때 ‘다윗의 집’은 명징하게 왕조를 의미한다.

[10] Eilat Mazar, The Summit of the City of David: Excavations 2005-2008, Final Reports Vol. 1 (Jerusalem: Shosham 2015). 176p

[11] A. Cohen-Weinberger, N. Szanton and J. Uziel. 2017. Ethnofabrics: Petrographic Analysis as a Tool for Illuminating Cultural Interactions and Trade Relations between Judah and Philistia during the Iron Age II. Bulletin of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377 : 1-20

[13] 강후구, 예루살렘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 : 구약시대를 중심으로, 한국구약학회, 2018, 219p

[14] T.N.D. Mettinger, Solomonic State Officials:A Study of the Civil Government Officials of the Israelite Monarchy, ConBOT 5 (Lund: Gleerup, 1971)

[15] William G. Dever,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양지웅역, 삼인, 2022, 167p. 솔로몬 시대의 행정화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있다. (Reich 1992, 210-11; Fritz 1995,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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